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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휴먼라이브러리 <편견의 말들> - 홍ㅇ진

202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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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의 말들, 온택트(On:tact) 전시회 >


  내가 <편견의 말들, 온택트(On:tact) 전시회>에 참여하게 된 것은 2021년의 여름이었다. 나는 흔히 코로나 1세대라고 불리는, 온라인 수업의 첫 희생양 20학번 대학생이었다.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코로나로 무미건조한 1학년을 보내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2학년이 되어있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될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편견의 말들 전시공모문이었다.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지원했다. 1학년 전공 수업에서 배운 포토샵과 일러스트 프로그램들을 응용해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이었고, 곧 방학이니 준비 기간도 알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나의 여름방학을 가장 특별하고 값진 기억으로 만들어 주었다.

 

  <편견의 말들> 은 우리 주변에 만연한 편견을 되짚어 보는 의도로써 기획 된 전시회이다. 그 준비 과정은 다음과 같다. 하나, 추첨을 통해 시민들에게 일상 속 편견의 말들을 공모받고, 그 중 50가지를 선발한다. , 학생들은 선발된 사연 중 두 가지를 골라 포스터를 제작한다. , /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이를 전시하고, 인터뷰, 도록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제작해 배포한다.

 

  나는 공모된 사연 중 나이치곤 젊게 사신다엄마는 강해야한다는 편견 두 가지를 선택했다. 첫번째 나이치곤 젊게 사신다는 말은 사연자님의 덧붙임이 참 인상깊었다. 사연자께선 환갑의 나이로 폴댄스를 수강하러 갔다가 이 말을 들으셨다고 했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짓밟는 무레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 선정했다. 두번째로 선정한 엄마는 강해야한다는 말은 어쩐지 보자마자 마음이 아팠다. 엄마라는 이유로 갖는 책임감을 당연한 것이라 느껴서는 안된다는 사연자님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이후 몇 차례의 줌 회의를 거치며 약 한 달의 포스터 제작 기간을 가졌다. 그동안 나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에서 이미지를 따온 첫번째 포스터와, 날카로운 상처로부터 자식을 감싸 보호하는 담담한 엄마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두번째 포스터를 완성하였다.

 

  말들을 고르고 포스터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혈액형, MBTI 등 우리가 재미로 시작하게 된 유형 검사가 어느순간 색안경으로 둔갑해 나타난다. 령대에 따라 누군가는 불특정 다수를 틀니나 급식 등 사물에 빗대 비꼬기도 한다그러한 생각들은 각종 미디어, 또는 현실에서 누군가를 비하하고 상처주는 무기로 사용된다. 편견의 말 전시는 일상에서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던 불편한 진실들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작업에 공감한 탓일까? 온라인 전시가 시작되고, 많은 사람들이 웹사이트에 접속하여 전시를 관람했다. 짧은 뉴스 보도로도 홍보되고, 접속자 수가 몇 천명에 달하기도 했다. 그만큼 큰 전시가 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조금은 얼떨떨하면서도 신기했다. 전시는 또한 다른 분들의 작업물을 보는 재미도 느끼게 했다. 나는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들을 이미지로 구현한 동기들, 선배들의 작업이 근사해보였다. 더 많은 관련 활동에 참여해보고 싶었고, 이 전시를 끝까지 마무리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시립대학교 중앙로에서 추가적으로 열리게 될 오프라인 전시 준비 임원을 구하는 공고가 내려왔고, 나는 자신있게 지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큰 규모의 오프라인 전시를 책임질 임원이 나를 포함해 세 명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2주를 조금 넘는 짧은 시간 안에 전시를 기획하고, 업체에 의뢰하고설치하는 과정을 모두 끝마쳐야 했다. 함께 준비를 맡게 된 동기 둘도 전시와 관련된 경험이 없었기에 조금의 부담감이 앞섰다. 하지만 불안하던 마음만큼, 설레는 마음도 컸다. 적극적으로 우리의 전공을 활용할 수 있는 큰 기회였다. 그렇게 53일에 하게 된 첫 회의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전시의 방향을 마음껏 생각해내며 웃던 기억이 난다. 이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회의에 매진했다. 코로나로 만날 수 없는 탓에 줌을 이용한 온라인 회의를 거쳤다. 2주동안 매일 머리를 맞대었고, 회의록을 기록하고, 여러 업체들에 전화를 돌렸다.

 

  우리는 단순히 감상에 그치는 일반적인 전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이 색깔과 가림막, 거울에 담긴 의미들이었다. 먼저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은 각각의 포스터를 가린 말 덮개를 들추어야만 온전한 포스터를 감상할 수 있다. 편견이 우리의 시야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딱 편견만큼의 시각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가벽과 로고, 포스터 등의 대표 색깔이던 노랑과 보라. 이는 보랏빛으로 멍든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와 격려의 노란빛 새살로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작품의 사이사이에는 작은 정사각형 거울들을 배치했다. 마지막엔 이 파편 조각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큰 거울을 만드는데, 이것은 그동안 왜곡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우리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비추어 준다. 몸은 피곤했지만 그만큼 매 시간이 즐거운 배움의 연속이었다. 디자이너로서, 또 기획자로서 하나의 전시를 완성한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할 수 없던 경험이었다.

 

  길고도 짧던 기획 기간이 끝나고 전시 설치를 위해 모인 중앙로는 이전에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우리가 계획한 설계도대로 배치된 18m의 큰 가벽들, 멋지게 인쇄된 34점의 포스터들, 그리고 아주 큰 글씨로 배치된 편견의 말로고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들뜬 마음과 함께 발 빠르게 각종 부자재들의 배치와 설치를 도왔다. 그리고 마침내 524, 일주일 간의 전시가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중앙로를 오가며 우리의 전시를 관람했고, SNS에서도 간간히 감상 후기가 보이기도 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밤낮 없이 고민한 우리의 흔적들이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재탄생 하다니! 본가에 계시던 부모님께서도 서울까지 먼 길을 달려 오셨다. 함께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전까지 나는 스스로의 작업을 보여주는 것에 부끄러움이 많았다. 자존감이 조금 부족하다고도 느낀 시기였다. 사람들에게 평가받는 것이 두렵다 느껴지기도 하고, 스스로가 부족한 사람임을 끊임없이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나에 대한 편견 아니었을까? 편견의 말 전시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의 생각도 바꾸었다. 전시의 준비 기간 동안 함께 노력해주었던 모든 사람들과,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경험을 얻게 해준 서울시립대학교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