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메뉴

List

한국장학재단 대학생 청소년 교육 지원 - 이ㅇ빈

2021.11.10

  • 첨부파일
  • 조회수 713

< 다채로운 에너지 >

 

  이미 수학학원에서 선생님으로 오래 일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대하는 것에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 청운지역 아동복지센터의 문을 열며, 내 담당 멘티는 누구일까 기대했다. 하지만 센터장님을 따라 들어간 방에는 이미 멘토 선생님 5~6명이 들어차 있었고, 각각 일대일로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나이도 초등학생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가르치는 과목도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받아쓰기, 학교 숙제까지. 당황한 마음을 감추고 선생님이 안내해 주신 자리에 앉아, 옆자리에 앉아있는 멘티와 눈인사를 했다. 내가 도착하기 전부터 꾸물꾸물 문제를 풀고 있었고, 곧 모르는 문제들을 모조리 별표를 쳐서 나에게 문제집을 넘겼다. ‘어떻게 멘티가 차분히 문제를 풀게 할까?’ 어색함과 당황스러움에 진땀이 흘렀다. 멘티는 이미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우선, 멘티의 어색함과 불편함을 풀기 위해 이런저런 잡담을 해보았다. 학교는 어디를 다니는지, 나는 통학을 하는데 지하철에서 무엇을 하는지,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멘티의 긴장은 쉽게 풀렸다. 다행히 편해진 표정의 멘티와 함께 문제를 차근차근 읽을 수 있었고, 오늘 분량의 공부를 마쳤다. 꾸벅 인사를 하고 떠난 멘티 자리로 다른 아이들이 왔다. 새로운 멘티가 옆자리에 앉을 때마다 이름을 불러주고 멘티에게 했던 것처럼 이런저런 말을 붙였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모든 것을 잘 받아주었고, 나에게 궁금한 것도 곧잘 물어봤다. ‘선생님 몇 살이에요?’ ‘선생님 머리가 왜 짧아요?’ 처음 보는 아이들과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며, 쉬어버린 목과 함께 첫 멘토링을 마쳤다.

 

  두 번째 멘토링 시간, 떨리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갔고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같이 앉아서 공부를 했다. 한 명 한 명 인사를 나누고 잡담도 나누며 20여 명의 아이들과 얼굴을 트기 위해 노력했다. 세 번째 멘토링에서는, 센터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이 나와서 인사를 해줬다. 그리고 1~2학년 멘티들과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었는데, 한 친구는 자기 필통 안에 있는 연필들을 하나씩 구경시켜주고, 예쁘다고 칭찬하니까 작은 메모지를 한 장 선물로 줬다. 다른 친구와는 깔깔깔 웃으며 열심히 덧셈 기초 공부를 했다. 나를 좋아해 주는 아이들 덕에, 청운지역 아동복지센터가 편해졌고, 좋아졌다.

 

  물론 저학년 친구들과 달리, 아이들 중에는 멘토링 난이도가 높은 친구들도 있다. 그중에서도 한 친구는 문제를 풀다가 쉬고 싶다고 엎어지고, 이미 다녀온 화장실을 또 간다고 하는 아이였다. 다행히도, 수학학원에서 일할 때 비슷한 학생을 겪어본 덕에, 특별한 전략을 쓸 수 있었다. 그 특별한 전략은 바로 쉬게 해주는 것이다. 10분간 마음대로 쉬게 해주고, 그 뒤에는 같이 문제를 풀자고 약속을 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나의 리드를 잘 따라온다. 이 외에도, 워낙 다양한 과목들을 지도하는 터라 따로 예습을 할 수 없었기에, 즉흥적인 이야기로 집중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영어를 대체 왜 배워야 하는 거예요?’라고 묻는 멘티에게는 외국 친구와 주고받은 영어 채팅을 보여줬다, 곱셈 연습문제를 잔뜩 틀려서 화가 난 한 친구가 벽을 치다가 불을 꺼버렸을 때는 어머 승호야, 아무리 화나도 불까지 꺼버리는 건 너무 심하다!’라며 깜짝 놀란 제스쳐를 했고, 그 친구는 다시 꺄르륵 웃으며 틀린 문제를 고쳤다. 역사 공부를 하다가 독립운동이 궁금해진 다른 친구에게는 고등학교 반크 동아리 이야기를 해주었다. 기본적으로 가볍게 친구처럼 다가가는 스타일은 유지하되, 저마다 다르게 접근했다. 누구와는 조금 더 진지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했고, 누구와는 발랄하게 장난을 걸기도 했다.

 

  많은 멘티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새로운 친구를 한 명 한 명 사귀는 것과 같았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친해지는 과정을 거쳤다. 아직 초등학생들이기 때문에 말을 안 듣고, 정신이 사납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특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 조건 없는 순수한 마음에서 오는 밝은 에너지를 얻어 갈 수 있다. 게다가 각 아이마다 저마다의 이야기와 성격들이 있어서, 다채로운 에너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멘토링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눠줄 수 있는 기회였다. 지금까지 나는 항상 학생이었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인생을 먼저 살아본 선배이자, 궁금한 것을 알려주는 선생님이다. 한 학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누군가에게는 과학 그래프를 읽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누군가에게는 몇일이 아니라 며칠이라는 맞춤법으로 알려주었다. 누군가에게는 맥도날드 로고에 빗대어 알파벳 m 모양을 알려주고, 곱셈 올림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유관순 열사의 독립운동에 대한 작은 조각을 나눠주기도 했다. 멘토링 프로그램은 이렇게 나에게 많은 에너지를 주었고, 또 나를 나눠줄 수 있는 수 있는 기회였다.

 

  교환학생을 떠나기 전 마지막 멘토링을 하기 위해 도착한 복지센터는, 크리스마스 공연 준비로 복작복작했다. 아이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고, 마지막 인사도 나누었다. 아이들이 나를 기억해 주길 바랐고, 함께한 시간 동안 많이 즐거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한 친구는 나비 모양의 작은 플라스틱 반지를 주었다. 멘토링 기간 동안 수고했다는 졸업 선물처럼 느껴졌고, 작은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어디선가 멋지게 성장할 아이들에게 플라스틱 반지를 낀 손을 흔들며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센터를 나섰다.